작가의 글
나는 형상을 감추며 드러내는 무늬로 가득한 그림을 그린다. 최근 작업은 마블링 무늬 배경에 인물을 비롯한 동, 식물 형상을 겹쳐 그리고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건물의 벽을 장식하던 부조, 조각의 부분으로 입체적인 면모가 강한 것들인데, 그림에서 마블링 무늬와 결합하여 무늬의 일부처럼 녹아들어 평면적인 화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배경 무늬가 형상의 일부가 되도록 하거나, 형상을 가리는 행위를 반복해 그림의 구조와 층의 순서를 쉽사리 알기 힘든 평면적인 화면을 만드는 것은 형상과 배경의 관계에 대한 나의 관심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진 화면의 특징은 형상과 배경의 관계가 위계적이지 않고 평등하다. 왜냐하면, 형상과 배경, 주연과 조연처럼 서로 반대항에 있는 것들의 견고한 구분이 모호하게 되어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형상과 배경의 우열 관계’, ‘그려진 대상 간에 서열 관계’, ‘삼차원 공간과 그 안에 실재하는 사물의 관계’의 경계를 유동적이고 서로 침범하게끔 만들며 평평함과 평등함의 가치에 주목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을 나는 ‘무늬그림’이라 일컫는다. 내 그림 속 무늬는 그림 표면에서 장식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형상과 배경처럼 반대항에 있는 것들은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도 한다. 무늬는 동물이 이성에게 화려한 무늬를 펼쳐 유혹하듯, 화면을 화려하고 어지럽게 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끈다. 동시에 형상과 배경의 구분을 쉽사리 하지 못하도록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무늬그림은 이중적인 속성을 가진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잘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그림은 대상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즉각적인 반응이나 감정보다 지속적인 관찰과 이해를 요구한다. 그려진 존재를 쉽게 보여주기보다 존재함을 알아채는, ‘존재가 드러나는 지각 경험’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그림은 어떤 ‘존재’를 그리는 게 아닌 ‘존재가 드러남’을 그리는 것이며 따라서 어지러운 무늬를 통해 감추기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과 같다.
축제(Festival). 2023, 종이에 마블링,수채, 80.5x81cm
남성 조각. 2023, 종이에 마블링 수채,마블링. 35x25cm.
비너스와 사티러스. 2023, 종이에 마블링, 수채, 130x106cm
모란. 2023. 종이에 수채, 마블링, 35x25cm
태양. 2023. 종이에 마블링,수채, 46x46cm
조유정(1994~)
학력
201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202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판화전공 졸업
개인전
2018 PPAP, 서울대학교 우석갤러리 , 서울
2021 무늬그림,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2 Veiling after Tracing,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3 Marble ⸱ Marbling ⸱ Marbled,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단체전
2018 가을展, 리디아갤러리, 서울
2020 Scattered Reflection, 적정거리유지, 서울,
2020 2020 신진작가 발언전,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0 움틔움전,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0 판화X석판화, 프린트아트리서치센터, 서울
2020 Market AP, 언더스탠드에비뉴, 서울
2021 옵티무스, 갤러리 내일, 서울
2022 작가의 레시피,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 서울
수상 및 선정
2019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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