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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아 초대전 <가공된 사물의 초상> 2019.10.17 - 10.30


가공한 사물의 초상

1.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주의 깊은 관찰은 내 일상일 뿐만 아니라 작업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나는 본능적인 감각의 날 을 세워서 다채로운 사물들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적절한 시점을 찾아내고 관찰 하 는 것을 반복하며 즐긴다. 즐거운 일이기에 반복이 가능하다. 각기 다른 종류의 사물들이 가진 다양한 형태미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 그럴 때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사물에 대한 추억이 한데 맞물려 내 작업은 구체화된다.

2.

도저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물은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형상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부분적으로 자르고, 잘라둔 것들을 모으거나 뒤섞어 탑처럼 쌓아올리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확대되고 좌우가 뒤바뀐 사물들은 본래의 모습보다 무척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사물이 본디 가진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은 조금씩 전과 다르게 되어간다. 내 손을 거처 가공된 사물들이 탑처럼 쌓여있다.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물의 본질이 뒤바뀐 채 기묘하고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 순간을 정지된 화면처럼 붙잡아 두고 싶었다. 사연을 간직한 채 묻혀 있다가 불현 듯 세상 밖으로 나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작은 사물들. 그것들이 모여 거대한 존재로 다가오는 순간을 마치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남기는 일종의 초상화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흰 여백이 많은 화면의 정 중앙, 그 막강한 존재의 위치에 나는 하찮은 사물들로 만들어진 탑을 배치했다.

3.

내게 이 사물의 탑들은 일상의 즐거움 이기도하고 때로는 고독한 나 자신을 보게 되는 찰나이기도 하다. 존재랄 것도 없이 변변치 않게 떠돌다 버려지는 사물들이 내 주변에 차고 넘친다. 그것들 안에 투영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탑이나 든든한 기둥과 같이 보여 지도록 사물의 크기를 변형하고 배치하고 접합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미미한 사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동시에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위안 받고자하는 노력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목받지 못하던 평범한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과정, 문득, 갑자기 의외의 생경함을 보여주는 친숙한 사물들을 나열하는 것. 그것들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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