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벅 (유성일) 기획 초대전 2018.12.13~26

존재의 부재

작가는 어떤 생명에 매개체로 들어가는 의료의 기구를 사용하여 상징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설치되어 있는 죽은 오브제들은 생명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병든 사회를 의미하면서 작가자신이 치유를 통해 희망의 상징을 나타낸다 한 생명체 안에서 이성과 본질이 그 시대의 환경 속에 빠져들면서 혼돈된 사유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는 폭력적으로 변질되어가는 이중적 사고의 개념을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썩어가는 사물을 통해 병들고 죽어가는 사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물음의 태도는 그의 작품에 여전히 특징으로 남아있다.

이번 전시에서 설치된 유벅작가가 사용하는 의료 오브제는 병든 사회의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면 그에 대한 치료의 희망을 나타내며 그 안의 보이지 않는 내면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자신이 의사가 아니듯이 그가 사용하는 의료 기구는 의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오브제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서 실용성이 상실되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상징적 개념을 만들어 내는 재료로 나타난다. 이렇게 사용된 주사기나 생닭, 계란 등의 오브제를 이용한 유벅작가의 개념은 인간과 자연 또는 현 시대의 환경과 문명으로 인한 생명이 상실된 존재의 병든 사회에 대한 비평이라 할 수 있으며 궁극적 의도는 부재의 치유라 볼 수 있다. 이때 외형(생명)과 내면(폭력) 즉 긍정과 부정의 모순적인 구조를 잇는 작가의 작업은 결국 인간의 이중적 구조의 합일에 대한 기원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 깔려있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물음의 태도는 그의 작품에 여전히 특징으로 남아있다.

  • 1985 추계예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 1992 프랑스 파리 8 대학 조형예술과 졸업

  • 2000 올해 10인 한국미술 대표작가 선정 (한국 문화예술 위원회)

주요 개인

1992 파스칼 갤러리 (파리)

1994 뤽 크뤨 갤러리 (파리)

1997 벵센느 숲 project ( 벵센느)

2000 토탈미술관 (장흥)

2005 일현미술관 (양양)

2009 성곡미술관 (서울)

2011 서산문화센터 (서산)

2017 중랑천 영상 project (의정부)

주요그룹전

2014 유럽 초대 영상 작가 미디어전 (브룩셀,벨기에)

2015 누벨 폴리 국제 야외 설치전 ( 생 제멘 엉 레,프랑스)

2016 강정 대구 현대 미술제 ( 대구)

2017 청주 공예 비엔날레 기업 미디어 프로그램 지원 (청주)

http://blog.naver.com/yusi58

유벅의 존재의 부재전 미술학 박사 박성실 참으로 오랜만에 일상에 묻혀 무디어진 가슴과 생각들을 일깨우는 오브제작업을 만났다. 작가 유벅의 ‘닭’이라는 설치 작업이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그리 크지 않은 하얀 공중에 닭 한 마리가 투명한 실로 묶여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날 것에 멈짓하다 시선이 바닥에 닿으면, 강처럼 흐르는 계란의 흰자의 흐름위로 볼록 튀어나온 노른자들이 섬들처럼 떠있다. 멈춰선 내게, 생명이 제거된 털 뽑힌 식재료로서의 닭은, ‘이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살아있는 생물로 부활해 다가 온다.

기계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인간의 의식 발전과 기술발전을 통해, 이제 더 이상 닭고기를 얻으려 마당을 달리던 그 살아있던 닭의 모습은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 되었다. 살기 위해 도망가고, 먹고 살기 위해 쫓아가던 그 옛 어른들의 인간적인 뒷모습을 기억나게 했다. 둘 다 지금, 여기에 살아 있던 존재들! 잘려나간 닭머리는 온데간데 없고, 곧장 요리에 쓰일 육신만 털이 뽑힌 체 남겨져 있다. 그 여실한 리얼리티 위에, 주사기가 꽂혀 있다. 무엇을 위한 주사약이었을까? 묵중한 체중을 얻고, 상품으로서의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주사한 성장촉진제인가, 아니면 팔기 위한 상품으로서 더 깔끔한 고기덩어리로 보이기 위한 면역력강화제일까? 말끔히 제거되어 매달린 그 닭 속에는 이젠 존재하지 않는 알주머니를 통해 무수히 쏟아져 나왔을 각기 다른 생명체인 달걀들이 시간을 뛰어 넘어 함께 디스프레이 되어있다. 우리의 풍요 속에 혹 정검 되지 않은 폭력성과 이윤추구의 철저한 자본주의 사고를 작가는 묻고 있는 듯 하다. 이 닭은 몇년 전 강제교배와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낸 ‘털 없는 닭’ 뉴스를 떠오르게 했다. ‘경제적 효율성’과 ‘편의성’을 목적으로 도축과정도 빨리 하고, 털을 뽑는데 드는 비용도 삭감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현대 과학 기술로 만들어낸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즉 이 설치 작업은 인간이 그 존재를, 무엇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아무 생각 없이 아침 식탁에 오르는 맛있는 계란후라이로서 식재료만이 아니라, 그 존재들은 우리가 그러하듯, 이 시간과 공간에 몸을 가지고 함께 공존하는 살아있는 수많은 생명체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 예리한 작가의 ‘존재와 인식’에 대한 시각은, 다른 평면 작업과 사진작업들 에서도 엿볼 수 있다. ‘꽃병2’은 마주선 순간, 거대한 암벽의 표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듯도 보이고, 비행기를 타고 항공에서 내려다 보았던 큰 밀집된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시의 풍경을 보는듯했다. 그 건물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연질서의 상징인 햇빛을 받아 서로의 상대성을 대변해 준다. 어느 정도 높이에 어떤 형태의 어떤 크기로 각 개별적 특성을 가진 하나하나의 존재들인가를 보는 순간 상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된다. 그 형이상학적 존재성을 표현한 그 소재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폐지 분리쓰레기로 버리는 골판지 박스이다. 물건을 안전하게 저장, 운반하기 위해 두터운 포장종이 사이에 요철모양의 종이를 두어, 충격을 흡수하는 요철형 된 종이박스이다. 그는 그 버려진 박스에서 이세상 모습과 상대성이라는 절대성을 성공적으로 아름답게 드러내었다.

이런 그의 아이러니의 표현은 사진작업 ‘에비앙’에서도 읽을 수 있다. 먼 거리에서 본 그 작업은, 따뜻하고 빛이 투과된듯한 꿀병을 찍은 사진 인가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신비하고 풍요롭게 보인다. 주위가 어둡고 가운데가 밝은 색감의 갈색 백그라운드에 반짝거리는 다양한 크기의 밝은 점들은 공기층이 투과된 신비로운 우주풍경 같게도 느껴진다. 헌대 가까이 가서 그 점들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여러 종류의 곤충들이다. 거기다 작가의 의도를 읽으려 본 제목은 ‘에비앙’이다. 자연예찬의 본보기가 되는 명소의 이름이자, 생명을 상징하는 생수회사의 기업명이자 제품명이다. 보여지는 인상과 실제 존재들, 그리고 제목이 가진 각기 다른 세계가 한 순간에 충돌을 한다.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그의 이런 작업들을 지켜보며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의 강연이 떠올랐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우리의 세계에서 누구로 존재하고, 어떻게 존재하기를 원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의 오른쪽 뇌의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저는 생명력입니다. 저는 저라는 형태를 이루는 50조의 아름다운 분자 천재들의 생명력입니다. 또는 이 생명력에서 분리되어 단일하고 견고한 개인이 철저히 되는 왼쪽 뇌의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별인 신경해부학자 질볼트 테일러 박사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다? 언제 선택하시겠습니까? 유벅작가의 작업들에서 생생한 그의 물음을 듣게 된다. 큰 생명력 안에 다른 모양의 생명들로 우리 자신을 인식할 것인가, 또는 철저히 구분되고 분리된 개체들로 인식할 것인가에 따라 이 세상은 다른 세계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어느 쪽을 선택 할 것인가?

닭 250x250x170, 닭 주사기 계란, 2018

얼굴, 에비앙, 인간

꽃병1, 35x40, 패널 위에 골판지 꽃병2, 30x50, 패널 위에 골판지

물고기 400 600 170 , 링겔,물고기, 물, 사진, 소금

태양광 패널 project 태양광 패널,계란

호흡 RUNGIS 고기공장에 monitor, single channel video(3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