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칠 초대전 2017.09.07 - 2017.09.20

최장칠(崔璋七)

choi jang chil

학력

-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 중앙대학교 회화과 졸업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서양화 졸업

Randomicity175 oil on canvas 33 x 67 cm 2017

미적 감성을 통한 자연에로의 회귀: 최장칠의 작품세계

김 광 명(숭실대 명예교수, 예술철학)

최장칠은 상해국제아트 페스티벌, 한-두바이 한국현대미술전 등 다수의 초대전과 그룹전에 출품하여 왔으며, 10여회에 걸친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이다. 오늘날 우리는 합리적 이성이 지나치게 도구화되고, 고도의 산업사회의 결과로 인한 인간소외와 물화를 겪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라거나 생태계의 위기 속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심하게 유리되어 자연친화적인 삶이 파괴된 ‘위험 사회’에 직면하여 있다. 이러한 위험사회의 극복을 작가는 예술적 감성에서 찾는다. 무릇 작가의 예술적 감성이란 그가 살고 있는 시대 및 삶의 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 최장칠은 어떠한 예술적 감성과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는 무엇이고, 또한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는 “감성적 인식의 완성이라는 미학적 개념에 접근하여 자연의 틀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감성이 결여된 이성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고민하고, 체험한 결과 자연이 배제된 삶을 상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학’은 ‘감성적 인식의 학’이다. ‘미학’은 감성을 이성의 유비(類比)로서 끌어 들이고 이성적 인식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기제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학’은 감성과 이성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소이며, 그리하여 온전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최장칠은 자연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찾아 그것의 단순한 시각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의 진정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다. 네델란드 구성주의회화의 거장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연은 완벽하다. 그러나 인간은 예술로 그 완벽한 자연을 재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연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말로 재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내부’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자연을 더욱 완벽하게 보기 위해서 자연의 겉모습을 변형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의 외양을 변형시켜 내부의 재현에 주목한 몬드리안의 시도는 진정한 자연의 내부를 표현하고자 한 최장칠의 작업의도와 닮아 있다.

Randomicity176 oil on canvas 117 x 117 cm2017

최장칠은 스크래치 기법을 활용하면서 부터 자연의 따듯함을 한층 더 고조시키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크래치 기법은 덧칠한 색에 따라, 그리고 긁어내는 도구에 따라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며, 감추어져 있던 내면의 색감이 밖으로 표출되며 신기함을 자아낸다. 그는 캔버스에 두텁게 색을 여러 번 입히고 물감이 마르는 동안에 깊이 사색하며 벗기고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여 수행한다. 무의식중에 몰입하여 오랫동안 작업하는 과정은 고통을 감내하는 참선수행과도 같아 보인다. 동적이며 동시에 정적인 자연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맞닿아 있다. 작가의 말대로, 처음엔 어느 정도 예상하며 드러날 색을 감지하지만 우연히도 예기치 않은 색감이 생성되어 신비스런 느낌을 자아내는 희열을 맛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예술적 기질은 즐겁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는 인상주의적 화풍을 선보이기도 하나 긁어내는 기법을 통해 우연히 얻은 결과물에 팝아트적인 요소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자신의 미적 대상을 자연에 두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공간감을 표현하며 숭고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연이란 인간에게 무엇이며, 또한 자연이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고 그 가능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현상은 인과론적이고, 기계론적이다. 하지만 인과론적이고 기계론적으로 온전히 해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자연에 남아 있다. 칸트(I.Kant, 1724∽1804)는 자연에 대해 목적론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그의 미학이론에 원용한 바 있다. 자연의 영역이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합목적성이라면, 아름다움의 영역은 주관적이고 형식적인 합목적성이라 하겠다. 자연현상의 압도적인 위력은 인간인식의 영역 밖에 놓이나 우리는 안전한 거리에서 이를 관조하며 숭고라는 정신의 고양된 힘을 느낀다. 즉, 숭고함은 자연의 위력이 아니라 우리의 심성능력과 예술적 관조에서 나타나는 정서이다.

Randomicity177 oil on canvas 117 x 117 cm 2017

최장칠은 자연에서 영감을 찾고 여기에 자신의 감성을 보태어 작업한다. 산업화된 도시적 삶에서 오는 온갖 욕망을 절제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찾아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삶의 터전을 접하고자 한다. 흔히 자연 촌락은 신이 만들었으며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자연촌락이나 도시도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든 산물이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놓여 있다. 여기에 작가가 재해석하고 있는 독특한 자신만의 자연관이 드러난다. 그에게 자연의 모습이란 새, 산, 나무, 물, 들판 등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호숫가에 드리워진 나무와 헤엄치는 물새, 떼 지어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나는 철새가 새로운 산수화의 풍미를 엿보이게 한다. 또한 울창한 숲 속의 나무들이나 독특한 분위기와 파도치는 바닷가의 정경은 낭만주의 시대의 자연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은 작가에 있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거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비평가이자 예술비평가인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은 특히 꽃에 대해 세심한 관찰과 애착을 보이면서, 자연이 우리의 평가를 받을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훌륭한 인간의 예술작품 만큼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칸트가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강조한 바 있는, 자연은 예술처럼 보일 때 아름답고, 예술은 자연처럼 보일 때 아름답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자연이나 예술의 형식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부분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얻는 즐거움이라는 느낌은 상호 주관적이며 반성적이다. 창조적 욕구의 분출로서 예술은 자연의 규칙과 힘들을 시각화해낸다. 예술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며, 바로 그 영향력을 통해서 작동한다. 자연계 안의 생명체는 생명의 지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규칙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규칙 속에 생명체 특유의 창조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경이로움이 존재한다.

우리를 지금과 같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은 자연의 힘이며,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모색하는 생태학은 그 어떤 독립체도 그것을 유지하는 거미줄 같은 연결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연에 대한 접근법이다. 따라서 생태학의 미적 특질은 매우 관계적이다. 최장칠은 자연을 생명의 근원으로 본다. 그의 예술적 감성은 원래의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생태계의 접근을 위한 안내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미적으로 승화하는 과정이요 모색이며, 일련의 작품은 그 결과물이라 하겠다.

 

1) 이 말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이 18세기 서구산업혁명 이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두된 환경오염, 생태계파괴, 인간호르몬체계의 변동 등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저서인 『위험사회, Risikogesells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ene』(Frankfurt a.M.: Suhrkamp,1986)에서 잘 밝히고 있다.

2) Piet Mondrian, Natural Reality and Abstract Reality』, trans. Martin James(New York: George Braziller, 1955❲1919❳) p.39. 데이 비드 로텐버그, 『자연의 예술가들』, 정해원이혜원 역, 궁리, 2015, 190쪽에서 인용.

3) 가능성과 연관하여 예술을 뜻하는 독일어 Kunst는 원래 ‘할 수 있다’(können)에서 나온 것이어서 아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은 곧 가능 성이기 때문이다.

4) 김광명, 『자연, 삶, 그리고 아름다움』, 북코리아, 2016, 31쪽.

5) 이어령 정형모, 『지의 최전선』, arte, 2016, 45쪽.

6) 데이비드 로텐버그, 『자연의 예술가들』, 정해원이혜원 역, 궁리, 2015, 70쪽.

7) 김광명, 앞의 책, 55쪽.

8) 데이비드 로텐버그, 앞의 책, 3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