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회화전 2016. 12. 15 - 12. 21


<작가노트>

최근의 작업은 그동안 청산이미지에 집중되어 있던 것에서 금강전도에서 차용된 산의 형상, 기암괴석의 이미지 등을 배열함으로서 개별적인 아름다움들이 모여서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것과 종이의 오브제가 갖는 마티에르를 더욱 강조한 점에 주목한다.

종이는 산에서 나고 자라서 베어지고 생산되어 현대산업사회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고 쓰레기로 버려진다. 흰 종이 위에 인쇄되는 뉴스와 정보와 이미지들은 인간의 삶의 행복과 애환이며 일상이다. 정보가 담겨진 채 파쇄댄 종잇조각들을 보면서 소멸의 허망함과 연민을 모아 캔버스 위에 산의 형상으로 조심스럽게 올려본다. 어쩌면 쓰레기로 전락했을 수도 있는 종이가 나의 작업을 통해 그들이 왔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사명감에 자아 도취되기도 한다. 어찌하다 사무실까지 흘러들어 온 종이의 고단한 여정과 운명은 산업화의 그늘 속에 소멸되어가는 현대인의 쓸쓸한 초상과 닮아 있다. 파쇄기의 톱날아래 분쇄되어 반생명의 절규를 토해내는 종이의 몸짓을 모아 푸르른 원시의 생명으로 되돌리는 일은 소외와 절망 속에 지쳐가는 현대인에게 다시 한 번 생명을 환기시키고 활력을 선물하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을 그려낸다는 것에 종이라는 매체가 갖는 속성과 의미를 깊이 연구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미지를 정착시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식화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의 작업에서는 기존의 청산도이미지에서 금강전도를 부분적으로 확대하면서 화면구성의 확장과 형상의 패턴 화를 통해서 미력하게나마 이미지의 현대적 요소를 발견하고자 한다. 만개 이상의 종잇조각을 붙이는 일과 도포한 뒤, 다시 천 번 이상의 붓질은 실로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작업이지만 이러한 지난한 작업을 통해서 쉼 없이 가고자 하는 것은 생명이라는 것이 멈춤이 없는 반복과 영속성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