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헌 개인전 ‘그러나 너그러운 숨결’


서길헌 個人展 ‘그러나 너그러운 숨결’

작가명/장르 서길헌 / 회화

전시기간 2016.9.15-2016.9.21

대일시 2016.9.16 pm5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12:00-19:00 (연중무휴)

전시장소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Art Space Qualia

서울시 종로구 평창 11길 41(평창동 365-3번지) 1F

Tel. 02-379-4648

세계의 살, 서길헌의 회화


박응주 (미술비평가)


여기 그림들이 있다. 튜브에서 마악 놓여난 원색들이 형태들로 변용되기 이전의 세계를 감싸는 빛의 몸인 듯이 강렬한 순도로 용틀임을 하고 있다. 그 형상은 고안되지도 기획되지도 않은바 무시무시한 색들의 싸움터, 격전장이다. 초록은 언제라도 빨강을 능가할 수 있고 파랑은 이 모든 전투를 영도(零度)의 무의미에로 또한 언제라도 데려갈 수 있다는 듯 깊다. 아도르노가 말한 가상(假象Schein)이다. 거짓의 가상을 해체한 곳 바로 그 장소에서 진리의 가상을 만들어야 했던 딜레마, 폭발적 표현과 표현의 금욕이 동시에 경주되어야 했던 아포리아가 그러했을 것이다. 색의 파노라마를 향해 저마다의 태생적 분노로 질주하며 달아나려는 색들을 한편으로 그저 뒤따라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색의 제자리를 일깨워주려는 간단없는 근심이 거기에 있다.


그의 회화의 이 기묘한 위상, 가상. 가화(假花), 가짜 꽃인데 진짜 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색깔들의 덩어리들, 이 소통 불가능할 듯한 그림에는 우리시대가 갖고 있음직한 하나의 '그림다운 그림'에 대한 기대치, 즉 미술이라는 장르(genre)에 각인되어 있는 일반적인 통념의 프레임을 속절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일말의 실마리가 있다.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주 휩싸였다던 '사물과 세계의 낯섦'에서 오는 '살 떨림'이다. 그는 젊은 시절 한때 그 낯섦에 무턱대고 익숙해지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살 떨리는' 세계와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의 길'을 걸어왔다. 남들과 달리 한참 뒤늦은 나이에 미대를 다니고, 또 '탈영토화'의 길을 따라 그림을 그리러 오랫동안 외국으로 떠나있는 등 평균치의 삶으로부터 꽤 동떨어진 길을 걸었던 것도 그런 연유로 읽힌다.


여기서 나는 다시 아도르노가 말한 인간화를 거부하는 ‘자연(自然)’이라는 타자의 이미지를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언어, 사물, 사태의 진실한 본체에 아무런 회유나 굴절, 타협, 장애 없이 육박해 들어가려는 무모한 자, 자연적 인간 말이다. 이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위험한 도전인지조차도 모른 채 돌진해 들어가고야 마는 '생감자- 자연'이다. 그의 그림은 어딘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나온 것들이 아니”라는 한 견자(見者)의 견해가 적절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여기 그림들이 있다. 낯설고, 조금 불편하고, 기승전결도 없고, 친절한 구석이라곤 없다. 우린 또 물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로부터 배운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천지불인(天地不仁)

‘너그러운 신성(神性)la divinité indulgente’을 오랜 동안 명제로 해왔던 그의 그림은 근육, 살, 신경망 혹은 피돌기들의 내부조직인 듯 덩어리와 연결망들로 뒤엉켜 있는 형상이었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그것들은 흡사 그려진 애브젝트(abject)들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우리 몸의 정수들이나 그렇기에 위생처리의 대상인 애브젝트들로 타기했던 것들, 느물거리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나의 자연성”이라는 의미로서의 이디오진크라시(idiosynkrasie)같은 것으로 보였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이미 위생화된 근대인인 우리에게 그것은 전혀 ‘너그럽지 않은’ 악취미라 힐난 받을만한 정도였겠다. 물론 이는 과한 매도이다. 그것은 단지 쉬이 독해되지 않는다는 데서 생겨난 과도한 엄살인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장엄한 성화, 주님 재림의 날의 풍경으로 보였기도 했다. 최후의 심판 날의 기상도(氣象圖)이거나, 다시 세워질 나라의 구곡도(九曲圖)인 듯도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확실치는 않다. 난독(難讀).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그것, 그것이 그의 대죄(大罪)인 것이다. 그의 그림의 성취와 실패는 이 난독의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그것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이 “nobody"라고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미에게 알려주고서야 비로소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던, 허약한 주체들의 참을 수 없는 약점인 것이다. 우린 이미 이름 없는 것들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자, 그는 ‘이름 지을 수 없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일부러 악취미 삼아 그린 적이 없다. 결과가, 근대인 우리의 눈에, 다 그려져 액자틀에 끼워진 그림을 보고 있는 눈들에게 일그러져 보이는 형상으로 보이는 것일 뿐인 것이다. 예컨대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관람객들에 선보여 무엇무엇을 의미하도록, 완상(緩嘗)되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있었다기 보다는 물감과 화폭이 저희들 스스로 질서를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의 보조자 혹은 조력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쪽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의 고독이 있었으리라. 그의 순진한 과정(process)은 관람자에게는 가차 없이 결과로밖에 이해되지 못하는 간격 말이다. 동일하게도 그의 ‘너그러운(indulgente) 신성’은 관람자에게는 그저 ‘물결치는(onduler) 흐름’으로 독해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그렇다. 어찌됐건 그는 관람자로부터는 두 발짝 떨어져 있는(자신으로부터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법한) 무엇을 좇고 있었다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다. 나는 그의 이 결과적으로는 불친절해져 버린 고독에 관해 지리하게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예술가’인가 보다……쯤 해 두고 넘어가면 어떨까. 그보다는 내게 마이크를 쥐어준 직업적 본분에 충실 한다면, 예의 “물감과 화폭이 저희들 스스로 찾아가는” 그 질서, 물감이 그려내고자 했던 그 형상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근사한 묘사를 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쪽이다.


천지불인. 자연은 결코 인자함이라곤 모른다는 말. 나는 그의 형상, 그가 조력자로 혹은 산파로 자임했던, 그 화폭에서 벌어진 일을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20대, 그 시절이란 미대를 꼭 가야 한다는 그 어떤 필요성이나 조언이나 인생의 선배도 만나지 못한 채 자부심만 턱없이 높았던 꿈꾸는 '젊은 예술가/화가'로서 호기 아니면 무지로 지나왔던 세월이었다고 한다. 무모한 배짱 하나로 버틴 10여 년 간의 청춘기에 스스로 세운 '대학(생)', 거기서 그가 만났던 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아닌 얼굴’이다. 그러다 새삼 스스로 소외시켰던 미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리라 맘먹고 그는 나중에 이번엔 (진짜)대학교에 간다. 그리고 이후 많은 세월을 '낯선' 땅인 프랑스에서 버티기도 하면서 차츰 그의 이번 전시작들에서 보이듯 ‘얼굴’ 작업들이 태어났다.


나는 우선 그것을 ‘얼굴’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얼굴로써 인식할 수조차 없는 얼굴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경로로 그의 시선은 외부로 드러난 표정들이 아니라 내면의 얼굴들로 시점을 옮겨갔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들뢰즈를 참조하여 명명한 그것은 얼굴기계(Visage-Machine)다. 한마디로 (원시시대 이후로의) 인간의 ‘얼굴’이란 유형화된 사회적 언어를 포함해 비언어적 미지의 표정으로서도 그때그때 무엇인가를 ‘발화’하고 있는 수만 가지의 기계라는 것. 기쁨, 분노, 사랑, 즐거움 등등의 온갖 표정을 한몸에 체현하고 있는 천변만화하는 정밀한 기계라는 것(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그의 테제가 발표된 지면은 「서길헌 회화전:Visage-Machine전」, 월드벤처아트센터, 2015.12 참조)이다. 서길헌의 그 얼굴, 물감과 화폭이 그려내고자 하는 얼굴을 천 개의 얼굴, 만 개의 표정, 수십 만 개의 무의식으로 작동되는 한마디로 인간이라는 기계의 모듈(module)을 그려내는 시도로, 결국 삶의 해명처로서의 자연, 저 자비심이라고는 없는 열린 세계인 것으로 볼만한 단서이다.


그것은 그저 얼굴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우리들 관자(觀者)들의 예의 그 입장, “결국 이것은 ‘무엇’을 그렸는가?”라는 질문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소이였을 것이다. 무엇? 물감이라는 세계 전체를 하나의 용기에 넣고 잘 흔들어 뚜껑을 열었을 때 마주칠 그런 영상이라면 적절할 비유가 될까. 그것은 그저 물컹거리는 듯, 혹은 파닥거리거나, 무엇인가가 휙 하고 빠져나가거나 한 듯, 그저 감각 작용의 화폭이길 바라는 듯하다. ‘촉지적 시각’이랄까. 그것은 관객에 의해 기대되는 ‘재현적 야망’에 결코 포획되지 않는 탈형식화를 향한 것, 즉 선과 색의 해방을 통해 그림이 ‘그림’이 아니라 어떤 날것, 생것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과 멀지 않다. 그 어떤 장르에도 갇히지 말 것, 혹은 본질로부터 너무도 멀리 달아나 뿌리 뽑힌 현재와 슬픈 거래만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표정기계(들뢰즈의 언어로라면, ‘안면화의 추상기계’)들을 해체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길헌의 회화가 또 다른 시간성의 제안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이유다. 벤야민이 어딘가에서 직선적 시간성을 파괴하는 곳에서 혁명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예감했던 시간성, 화가의 판본으로라면 ‘다른 식의 추상’에 대한 촉구였을까. 밖으로의 ‘표정’이 포획장치로서의 사악한 권력을 안으로는 은밀하게 지닐 수밖에 없었던 얼굴이라는 추상기계 너머, 뿌리와 명(命)의 고집 센 관조자(觀照者)인 그는 공간 속에 형태를 침투시켜 배경이 인물 앞에 존재하도록 시선을 변혁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날 나의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바 인간이 지은 대궐 같은 집들도 자연의 물길은 무서운 것이어서 끝내는 무자비하고 단호하게 자기의 길을 내고야 만다고 했듯이… 그는 자신의 길 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말로 ‘살 떨림’이었으리라.


그러나 다시금 문제는 이 날것, '생것'을 관객은 어떻게 촉지(觸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다. 그를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영매(靈媒) 쯤으로 손쉽게 치부해 버리지 않기 위해, 말하자면 그저 속 편하게 ‘예술가’ 취급을 해버리는 걸로 비켜나지 않기 위해 말이다. 구차하지만 지금까지의 말들을 다시금 거슬러 가보자. 그 결론으로는 “아직”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아직 우리가 안면화의 추상기계에 붙들려있는 한, ‘얼굴’은 곧 백인이며 제1세계인 한, 자유경쟁이라는 이름 아래서 부드러운 지배로서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한, 민족주의니 국가주의니 하는 이름 아래 군집을 이뤄 개인, 그 고유하고 도저한 개인성(individuality)을 유예시킬 수 있다고 믿는 한, 아직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당분간 예술가로서의 영매 노릇을 더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세계의 살, 떨리는, ‘그러나 너그러운 숨결’ 속에서 그렇게.